오랜만에 만난 사람

저녁 무렵, 옹달샘은 센터 청소와 정리를 위해 잠시 문을 닫는다. 그 시간에는 청소하는 사람만 남고 다른 이용자들은 밖으로 나간다. 청소가 한창일 때, 어떤 사람이 들어와 나를 찾는다. 보니, 낯이 익었다.

그는 대뜸 “목사님, 저 모르시겠습니까?” 한다. 술을 마셨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다 싶어, 상담실로 그를 이끌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일이 떠오른다. 옹달샘이 김안과병원 앞에 둥지를 틀고 사람을 받던 시절, 그는 술을 자주 마시고 와 무던히 나를 괴롭혔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니 그도 인정을 한다.

그렇게 술로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부터 술을 끊고 몇 년간 열심히 일을 하였단다.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일을 해도 돈은 모이지 않았고, 심신은 지쳐만 갔다. 문득 돌아보니 술로 세월을 허송하던 그 시절 그 자리에 자신이 다시 서 있었다. 그는 마냥 제자리를 맴돌았던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허망하더란다. 정말로 허망하더란다. 정신을 놓고 싶은 마음도 들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실제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단다. 자신이 이런 상태이니 수급권자로 만들어줄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옹달샘에서 하는 주거지원 사업을 어디에서 들은 듯하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무작정 도울 수는 없다고 했다. 어떤 근거 자료, 일테면 진단서나 호적 등본이라도 가져와 이야기를 하면 모를까, 아무런 근거 없이는 주거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을 하니 몇 가지 근거(가족 사항, 지금의 형편)를 말하며 자신을 정신병원으로 보내 달란다.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안타까웠다. 그를 그렇게 내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에게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이 그저 나라가 주는 생계급여에 의지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난은 나라님도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은 모두 맞는 말이 아니다. 가난은 꼭 개인 책임만은 아니다.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옳다. 그것을 위해 우리 사회는 안전망을 더욱 강화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그가 말하는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그도 그의 삶 가운데, 우리 사회 속에서 실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술 깨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나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씁쓸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정용균 / 목사,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