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부쩍 기온이 떨어졌다. 겨울나기가 걱정인 요즘 노숙자들에게 도시 속의 옹달샘과 같은 곳이 있다. 서울 영등포시장 로터리를 돌아 허름한 빌딩 3층에 자리한 '드롭인 센터(하룻밤 숙소)'가 바로 그곳이다. '드롭인 센터'는 종래의 쉼터와는 달리 한곳에서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편의에 따라 식사와 숙박, 목욕 등을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일시적인 노숙자 보호시설. 40평 규모로 하루 평균 30∼40명의 노숙인들이 찾아와 허기와 한뎃잠을 피하는 보금자리다.
이곳을 꾸리고 있는 '노숙자들의 성자'는 박성곤 목사(38). 한끼 식사조차 해결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희망의 등불이다.
'노숙자들은 밖에서 잠을 자다 보니 잘 씻지 못하고 빨래하는 것도 어렵죠. 그들을 위해 이곳에서는 씻기도 하고 빨래를 하거나 잠을 잘 수도 있어요. 또 저녁 식사로 라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쉼터처럼 제한을 두지 않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열어두고 있지요.'
드롭인 센터가 노숙인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롭다'는 점. 그는 '노숙자들을 통제하면서 지원책을 펴는 것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가능하면 그들 입장에서 편하게 해주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학대학 시절 외국인 선교활동을 준비하던 그는 막상 일을 시작하다보니 외국인보다는 내국인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처음 부딪히게 된 것이 도시빈민들과 노숙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역 인근의 '구세군 드롭인 센터'와 영등포역 근처의 '햇살보금자리'를 모델로 지난 4월 '옹달샘'이란 '드롭인 센터'를 운영하게 됐다.
''드롭인 센터' 장소를 물색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계약까지 했다가 파기당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노숙자들이 건물에 드나들면 냄새가 나고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었죠.'
현실적으로 그런 건물주를 탓할 수는 없었다. 다만 우리 사회가 말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하지
만 실제로 자신들에게 닥치면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드롭인 센터'가 가장 아쉬운 점은 자원봉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아직은 비인가 사회복지시설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 인가에 대한 욕심이나 바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산이 모자라 늘 살얼음 딛듯 한달 한달 꾸려가는 편입니다. 후원하는 교인들과 지인들의 도움이 버팀목이죠.'
여건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할 예정이라는 박목사도 청소년시절 술에 빠져 방황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정형편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탓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의 끊임없는 관심 덕분에 인생의 행로는 크게 바뀌었다. 어릴 적 꿈이었던 목사가 되기 위해 고신대에 진학, 목회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후 인천 아름다운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일요일을 제외한 주중 내내 봉사활동을 한다. 목사로서의 일보다 '옹달샘'에서 자원봉사에 매달리는 형국이 돼 버린 셈이다. '자원봉사자와 목사의 길, 그 두 길은 어쩌면 한 길인지도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는 그의 미소가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맑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