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이미 불황의 터널로 들어섰다. 비상경영에 나선 기업들은 앞다퉈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직장을 잃은 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실업자들이 속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했다 감당하기 힘든 손해를 본 사람들도 넘쳐난다. 무리한 대출로 집을 장만한 서민들 역시 보통 고민이 아니다. 집 값은 떨어지는데 이자 부담은 오히려 가중되니 밤잠을 이루기 어렵다. 여기에 물가까지 뛰면서 서민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런 불경기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니 우울하기만 하다.
불황의 증표들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9월 현재 노숙인은 서울 지역에서만 거의 3천명에 달한다. 날씨가 추워지고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지하도와 전철역으로 몰려드는 노숙인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급식소로 몰려드는 행렬도 갈수록 길어진다. 주식 투자에 실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과 전기세와 수도료를 내지 못해 단전 단수조치를 당할 처지에 놓인 서민들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신용불량자들이 속출하지만 금융권은 돈 줄을 죄고 있어 고리의 사채를 끌어대는 서민들도 급증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사회가 이처럼 급증하는 실직자와 노숙인, 무료급식자, 신용불량자, 민생고 비관 자살자 등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는지 진지하게 따져볼 때다. 서울시가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노숙인 겨울철 특별 보호대책을 시행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보호가 필요한 노숙인들이 충분하고 알맞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단순한 노숙인 보호가 아니라 실업 문제 전반에 대한 종합대책이다. 늘어나는 실직자들이 고난의 시기를 이겨내고 재취업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재교육시키는 정책이 절실하다. 무료급식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설을 지원하고 신용불량자들을 사채의 '덫'에서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또한 시급하다. 전기세를 못내 한 겨울을 냉방에서 떨어야 하는 빈민들도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정부는 각종 긴급대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기업과 은행을 살리고 건설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대책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불황의 가장 큰 피해자인 서민층을 살릴 수 있는 대책은 눈에 별로 띄지 않는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 예산을 증액하는 등 비상대책에 나섰지만 겨울철 난방비를 비롯한 빈곤층 지원 예산은 3천2백억 원 이상 깎였다고 한다. 기초생활보장 예산 등 230개 사회복지사업 중 절반 가까이는 예산이 삭감되거나 동결됐다니 이래서는 안 된다. 당장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들을 살리고 재활시킬 수 있는 재정적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기존에 배정된 사회 복지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우선 순위를 다시 따지는 작업도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장 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부터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첫 기자회견에서 1천 만 명이 넘는 실업자 구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가의 금융인보다는 집이 압류될 위기에 처한 납세자를 보호하겠다'는 오바마의 다짐은 우리 정부와 사회도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