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서 직장과 가정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인들이 다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은 물론 일종의 소외감으로 사회에 대한 왜곡된 증오심을 키워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분노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분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실제로 지난 20일 발생한 고시원 살인사건 용의자 정모 씨가 '사회가 나를 무시한다'는 불만을 쌓아오다 끔찍한 살인극을 저지른 것처럼 최근 다시 늘기 시작한 노숙인들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따라 전문가들은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 증가일로에 있는 노숙인 = 한때 2800명 선까지 내려갔던 서울시내 노숙인 숫자가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최근 증가해 다시 3000명 선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작년 7월 314명에서 8월 2990명으로 줄면서 3000명 이하로 내려선 서울시 노숙인이 올해 9월 현재 2929명을 기록하며 3000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거리 노숙인도 5월 516명, 6월 544명, 7월 615명, 8월 649명에 이어 지난달에는 652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거리 노숙인은 시설 입소자와 달리 아무런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길거리에 무방비로 노출된 점도 문제이지만 노숙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많은 보호시설 입소자에 비해 신규 노숙인이 많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경기불황 여파로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해 고향에서, 직장에서 떼밀리듯 쫓겨 나온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료급식단체인 '소중한 사람들' 관계자는 "서울역에서 아침에만 무료급식을 하는데 작년보다 100여명이 늘어 요즘엔 1000명쯤 밥을 먹으러 온다"며 "아무래도 경제가 어렵다 보니까 노숙자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막연한 불만’ 표출 위해 범행 가능성 높아 = 지난 15일 3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 모텔 화재 사건의 용의자는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노숙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7월에는 한 노숙인이 서울 흥인지문에 불을 지르려다 경찰에 붙잡혀 미수에 그친 사건도 발생했다.
이렇게 노숙인은 뚜렷한 동기 없이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제대로 된 영양 섭취나 위생 관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노숙 생활에서 오는 질병도 문제지만 이들이 속으로 앓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시 광역정신보건센터 이승연 팀장은 “2006년 노숙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했을 때 거리 노숙인의 78%가 정신건강 상담이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상담 때 불특정 다수, 사회 · 국가에 대한 불만을 주로 털어놨고 '국가가 잘못해 내가 이렇게 됐다'는 피해의식을 드러낸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노숙인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노숙인 실태조사에서 거리 노숙 기간이 2005년 3년에서 2006년에는 4년1개월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무엇보다 큰 문제는 노숙에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